옛추억에 잠기며
정진희
철썩...
찬란한 물보라와 함께 수면을 박차며 커다란 월척이 그 희고 날씬한 모습을 드러낸다.
손끝에 전해지는 전율, 온몸으로 느껴지는 짜릿함, 환희와 터지는 함성. 이것이 바로
낚시의 참 맛이 아니던가!
내 고향 심천(深川)은 금강이 사행천(蛇行川)을 이루며 마을을 안고 굽이굽이 흐르는 곳으로,
이로 인한 지형의 침식을 막기 위해 제방을 쌓아 생겨난 달걀 모양의 작은 호수가 있다.
이곳에서의 추억은 지금도 나에게 애틋한 향수를 불러일으켜주며 인생이 따분하고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꿈의 산실이다. 여름에는 멱을 감고 겨울에는 신나는
얼음지치기와 썰매타기로 해지는 줄 모르던 그곳… 계절의 변화와 더불어 많은 즐거움을
가져다준 곳으로 그중에서도 최고는 가을철의 낚시였다. 붕어, 잉어, 팔뚝만 한 가물치, 칠어,
뱀장어까지 많은 물고기가 놀고 있는 그곳으로 아버지는 언제나 어린 나를 데리고 가셨다.
티 없이 맑고 드높은 하늘, 밤톨이 여무는 황금들판의 끝자락에 아카시아로 둘러싸인 호수에
도착하면 불어오는 산들바람처럼 내 마음은 벌써 들뜨기 시작한다. 아버지와 나는 한 걸음에
건너 뛸 정도로 가깝게 보이는 호수 반대편 양쪽 폭에 마주 서서 수십 개의 먹이가 매달린
외줄기 낚싯줄을 길게 늘려 팽팽히 당겼다가 수면 위에 살짝 놓고 다시 잡아당기는 동작을
반복하며 가을하늘이 온통 담긴 파란색 수면을 긴장되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본다.
이윽고 줄이 팽팽해지며 낚시가 수면에서 살짝 떨어지는 순간, 호시탐탐 먹이를 노리던 물고기가
물 위로 힘차게 튀어 올라 미끼를 낚아챈다.
호수의 가장자리 한켠에는 억새와 함께 일년초인 작은 나뭇가지들이 무리를 이루고, 때아니게
만발한 붉은 꽃밭이 있다. 그러나 자세히...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 그것은 꽃이 아닌 고추잠자리,
빨간 고추잠자리였다. 해질녘의 진홍빛을 담뿍 머금은 빨간 고추잠자리들이 분분한 낙화같이
나뭇가지 끝에 흐드러지게 피어 붉은 꽃밭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날아갈 줄도 모르는 고추잠자리를 팔을 뻗어 한 움큼씩 양쪽 주머니에 가득 잡아넣으면,
이 고추잠자리는 그대로 물고기를 유혹하는 낚시의 미끼가 되는 것이다.
'花重金冠城 (화중금관성) 금관성에 고지 해 펫도다'
그 정경을 회상할 때면 언제나 떠오르는 두보(杜甫)의 한시, '춘야희우(春夜喜雨)'의 한 구절이다.
밤에 내린 봄비로 떨어진 꽃잎이 금관성 뜰을 붉게 물들였음'을 뜻하는 말이다.
즐겁고 행복한 그 추억에 잠길 때면 언제나 동심으로 돌아가 마음은 부풀고 생각만으로도
가슴은 뛴다. 그리고 그 추억은 내게 있어 더없이 감미로운 기쁨의 원천이 되곤 한다.
단풍이 깊어 가는 이 가을에도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그곳!
누군가가 "좋은 사람과 책, 그리고 추억이 있을 때 우리의 인생은 바뀌게 된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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