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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대종주 후기 |
 권훈달 |
2024-11-11 11:24: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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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지리산 종주 코스 중에서 대원사로 하산하는 11k를 걸어보지 못한 것이 마음속에 앙금으로 남아있었는데 이 가을이 다 가기 전에 걸어보기로 했다. 8일 밤 10시 사당역에서 출발하는 버스 안에는 화대종주, 성중종주, 백중종주를 하는 사람들로 만석이다. 나는 백무동에서 출발해서 한신계곡을 따라 세석, 장터목, 천왕봉, 치밭목대피소, 대원사로 이어지는 일명 백대 종주를 하기로 했다. 나에게 산행은 곧 고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주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죽으란 법은 없기 때문이다. 남들과 보조를 맞출 만큼 빠른 걸음은 아니지만 주어진 시간 안에서 경물 (景物)을 감상 하고 매 순간 변하는 감정, 고독, 이치를 깨닫는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이 보다 더 소중한 취미는 없을 것이다.
천왕봉에 오르니 11시 가까이 되었는데 정상 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 는 대기 줄이 장사진을 이룬다. 줄서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은 나는 옆에서 지리산을 품에 안을 듯 두 팔을 높이 들고 한 컷 찍고 하산 했다. 사람들은 왜 흔적을 남기는 것과 높은 곳을 좋아할까! 영역을 표시 하는 흔적과 인증 샷은 분명 다르지만 무의식중에 드는 생각과 행동에는 진화(進化)의 흔적이 배어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가령, 사람이 높은 곳에서 사는 것을 선호하는 이유는, 조망권 즉 시야의 확보가 침략자들 빨리 발견하고 선제적으로 대응 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나무 위에서 생활했던 원인(猿人)에서 그 원인(原因)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린애들이 불장난을 좋아하는 이유는 불의 발명이 현생인류에게는 그만큼 획기적이었기 때문일 수가 있고, 돌을 보면 주워서 던지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이유 또한 수렵과 전쟁의 잠재성 때문일 것이 다. 절에 가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현상, 태양은 수소와 헬륨이 타면서 빛을 발산한다는 것을 다 알지만 일출을 보면서 소원을 비는 행위는 샤머니즘 때문일 것이고, 여성들이 고운 피부를 선호하는 데에는 피부색(햇볕에 노출된 빈도가 적을 수 록 고운 피부를 유지 할 수 있기 때문)으로 가임기 여성을 판단하는 때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고, 총각이 처녀의 주위를 맴도는 행위, 처녀가 임신 주기를 비밀로 하는 이유 또한‘친자확인’이라는 인간에게만 있는 엄청난 사건 때문이라 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형 영장류로는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이 있는데 호모사피엔스와 침팬지의 DNA가 98.5%가 같다고 하며 침팬지와 고릴라 사이 보다 인간과 침팬지의 사이가 더 가깝다고 한다. 그렇다고 침팬지가 인간의 조상인가 그렇지는 않고 사촌 쯤 된다고 한다. 700만 년 전 아프리카는 열대우림 기후가 사바나 기후로 바뀌면서 나무위에서 살던 침팬지가 땅으로 내려오게 된다. 광활한 평야에는 각종 풀들이 무성했고 군데군데 관목 (灌木)이 있고, 맹수들이 득시글거렸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하는 과정 속에서 조상들은 생존을 위해서 먹을 것을 찾아 장거리를 이동해야만 했기 때문에 걷기가 특화된 현재의 발모양으로 진화했고 아울러 도구를 사용해야했었기 때문에 엄지손가락 힘이 강력한 쪽으로 진화했다. 맹수들로 부터 살아남기 위해서는 개체수를 늘려서 일부의 희생을 감수하는 방법을 선택했고,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는 것이 효과적 이라고 생각했다. 불의 발견은 구강구조는 물론 뇌의 크기 내장의 형태까지 바꾸어 놓았다. 씨족사회가 모여 부족사회가 되고 부족사회가 모여 부족 연합체 사회가 되고 부족연합체 사회가 모여 국가를 이루게 되는데 이때 신분제가 필연적으로 생겨나게 된다.
천왕봉을 내려가는데 무릎이 시큰거린다. 중산리로 하산 할까 계단에 앉아서 고민을 하고 있는데 올라오는 사람이 있어 하산 길의 난이도를 물어 보니까 ‘길이 험하기만 할 뿐 볼 것도 없고, 종주하는 사람들이나 다니지 가지 말라고 한다.’좀 있다 보니까 또 한사람이 올라오는데 상의가 같은 회사 제품이다. 물어보니까 시간이 넉넉하니까 천천히 내려가도 된다고 한다. 시간이 넉넉하니까 시간만 믿고 내려가기로 했다. 중봉에 오르니 이전의 등산로에서 보던 것과는 또 다른 풍광이 한 눈에 펼쳐져진다. 지평선 넘어 까지 끝없이 일렁거리는 물결, 그 위를 두둥실 뭉게구름이 하얀 거품을 내뿜고, 산줄기는 보는 각도에 따라서 봉우리도 되었다가 능선이 되기도 한다. 치밭목대피소에 다다르니까 천왕봉 아래서 2번째 만났던 양반이 내려온다. 구미에서 왔는데 천왕봉에서 점심만 먹고 하산 한다고 한다. 간식을 먹다보니 화대 종주하는 사람들이 몇몇 내려온다. 앞으로 9.2K를 더 내려가야 하는데 시큰거리는 무릎 때문에 걱정이다. 대피소에 구급약이 있었을 텐데 지나고 보니 늘 후회가 된다. 지난 종주 때 우의도 그렇고...
지난달 12일, 설악산 단풍이 절정이라는 소문에 예약을 했다. 관광차가 6대 출발했는데 줄지어 늘어선 버스를 보니까 고교시절 설악산으로 수학여행을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한계령, 오색, 소공원에는 이미 행락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한계령 코스는 가봤고, 오색은 사람이 너무 많고, 공룡능선은 병목현상이 심할 것 같고 처음으로 천불동 계곡으로 올라보기로 했다. 천불동 계곡은 주로 하산하는 코스로 이용되는데 등산 코스로 이용해 보는 것도 나름 괜찮을 것 같았다. 예상했던 대로 비선대 에서 다들 마등령으로 올라가고 나 혼자만 랜턴 불빛을 벗 삼아서 부지런히 올랐다. 고막을 찢을 듯이 세차게 흐르는 계곡물 소리는 가뜩이나 차가운 새벽 공기를 더욱 얼어붙게 만들고, 갠지스 강의 모래 알 보다도 더 많은 별들은 내 머리 위로 수북하게 앉았다. 1광년 전, 10광년 전, 심지어 수억 광년 전의 빛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득한 성자(聖者)”라는 오현스님 시가 생각났다.「하루라는 오늘 오늘이라는 이 하루에 뜨는 해도 다 보고 지는 해도 다 보았다고 더 이상 볼 것이 없다고 알 까고 죽는 하루살이 떼. 죽을 때가 지났는데도 나는 살아 있지만 그 어느 날 그 하루도 산 것 같지 않고 보면 천년을 산다고 해도 성자는 아득한 하루살이 떼.」우주의 시간에서 인류를 본다면 우리의 삶은 하루살이 보다 짧고 삶에 의미가 있다면 그 의미 또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양폭(兩瀑)대피소에서 아침을 먹으면서 사방을 둘러보니 공룡능선에서 내려다 본 것과는 또 다른 절경이다. 크기를 가늠 할 수 없는 바위는 철갑을 두른 듯 사방을 감싸고 있고 억겁의 세월동안 파내고 깎고 다듬기를 반복하면서 그려낸 각양각색의 형상들, 비좁은 틈사이로 뿌리를 내리고 수 천 년을 버티고 서 있는 끈질긴 생명력, 곱게 물든 단풍, 물길이 만들어 낸 크고 작은 담(潭) 소(沼)들, 하늘에서 굴러 떨어졌을 법한 바위는 물의 등살에 못 이겨 제각각의 얼굴을 하고 있는가 하면 천당폭포 물줄기는 막힌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것만 같고 옥빛의 맑은 물은 그 깊이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다. 희운각 대피소 가기 전 1K 깔딱 고개는 악명 높기로 유명 하다. 예전 하산 길에 올라오는 사람들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올라보니 죽을 맛이다. 무너미 고개에 도착하니 대청봉에서 내려온 사람 들이 공룡능선을 타기 위한 행렬로 분주하다. 희운각 대피소 또한 초만원 이다. 점심을 먹고 신선대를 올려다보니까 까마득하게 느껴져 올라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어떡하지, 그냥 내려가자니 너무 싱겁고 그렇다고 대청봉을 오를 수도 없고, 가자니 태산(泰山)이요, 오자니 숭산(崇山)이다. 소청을 목표로 가는데 까지 가보자는 생각으로 오르는데 하산하는 등산객들 길 비켜주느라 오를 수가 없었다. 꾀도 나고 더 이상 오르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고 하산했다. 너무 일찍 하산한 탓에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낼까 하다가 신흥사를 구경하기로 했다. 오래전에 낙산사에 갔을 때 비문(碑文)을 읽다보니까 양양 산불로 낙산사가 소실되어 새롭게 복원했다는 내용으로 비문의 감수(監修)를 설악산 신흥사 주지 무산 스님이 했다는 기억이 떠올라서 신흥사에 가면 스님에 대한 단서를 찾을 수가 있을 것 같았다. 가람(伽藍)은 그렇게 오래된 것 같지는 않고 일자형으로 배치되었는데 앞에는 쌍천(雙川)이 흐르고 뒤편은 황철봉, 좌측은 울산바위, 우측은 권금성, 앞에는 달마봉이 있다. 부도 탑이 있는 곳으로 가보니까 3기가 나란히 있는데 근래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부도 탑에는‘설악당무산대종사’라고 적혀있었다. 아! 순간 소동파가 동생에게 화답한 시 한 구절이 생각났다. 「인생이 무엇과 같은지 아는가? 기러기가 눈 밟는 것과 같지. 눈 위에 우연히 발자국 남겼다 하더라도 기러기 난 뒤 동쪽으로 갔는지 서쪽으로 갔는지 눈이 녹으면 어찌 알겠는가? 늙은 스님은 죽어 새로운 탑을 이루었고 (후략) 」이런 시가 있는데 그러고 보니 세월이 많이 흘렀다.
무산스님의 속명은 조오현이며 출가해서도 오현이란 필명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고 한다. 무산스님은 백담사 주지로 있을 때 백담사를 중흥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고 특히 사하촌(寺下村) 주민들이었던 용대리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도록 버스의 운영권을 마을 주민들에게 주었다고 한다. 사하촌이란 소설에 보면 주민들은 사찰의 횡포에 힘들어 하는데 오현스님은 상생의 길을 강구하여 부자 동네로 만들어 준 것이다. 그러다보니 마을 주민들은 백담사일이라고 하면 발 벗고 나선다고 한다. 백담사는 대청봉에서 시작되는 크고 작은 담소들 가운데 백 번째 자리여서 백담사라고 한다. 백담사에서 기거하던 만해 한용운이‘님의 침묵’을 이절 부속 암자인 오세암에서 완성했다고 하는데 한용운이 수 만 번 오갔을 그 길을 깨달음의 길이라고 한다. 언젠가 하안거를 마친 스님의 해제법문을 듣기 위해서 많은 스님과 신도들이 모인 자리에서 법대(法臺)에 앉은 스님 왈‘ 얼굴 봤으면 됐다.’하고서는 법대를 내려왔다고 한다. 100일 동안 골방에 틀어박혀 용맹정진을 한 스님의 입에서 나올 말인가? 모두들 어안이 벙벙했었다고 한다. 나는 어릴 때 아버지 따라서 친척집에 가면 아버지는‘어른을 보면 인사를 해야지?’어른들은 내가 무안해 할까봐 ‘얼굴 보는 게 인사고 얼굴 보면 됐어요.’하는 말을 듣곤 했다. 인사하는 예절을 몰라서가 아니라 쑥스러워서 그런다는 것을 어른들은 알고 있었기에 때문이다. 지금은 그러지 않지만 예전에는 답답한 일이 생길 때 마다 사찰을 찾곤 했었는데 절하고 돈 넣고 소원 비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다만 2시간 이상씩 땀을 뻘뻘 흘리면서 기진맥진 할 정도로 뛰어서 간다. 그러면 절에 도착 하자마자 신기하게도 답답했던 마음이 뻥 뚫리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스스로 해결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지 부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무산스님은 일깨워 주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설악산 소공원 입구에 보면 ‘조계선풍시원도장설악산문’이라고 크게 한자로 써진 현판이 있다. 나는 속으로 조계종의 시작은 조계산이 있는 순천 송광사로 알고 있는데 왜 설악산을 시원도장이라고 할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알고 보니 중국의 선종을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전파한 사람이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이 아니고 신라 때 도의선사라고 한다. 도의선사는 설악산(양양)에 진전사라는 사찰을 짓고 기거하면서 선풍을 크게 일으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진전사는 조선 초에 불타 없어져 터만 남아 있었는데 무산스님이 절을 새로 지으면서 설악산이 선풍의 시작 도장이 된 것이다. 선(禪)을 가장 잘 표현 한 말이 이심전심, 불립문자, 염화미소 이다. 화두를 들고 골똘히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보면 깨달음을 얻으면서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생기고 이루 형용 할 수 없는 기쁨이 찾아오는 경지를 선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말씀 즉 경전을 충실하게 따르는 것을 교종이라고 하고 참선을 통해서 깨닫는 것을 선종이라고 한다. 요즘 사람들은 사찰에 가도 비문을 잘 읽지 않는데 나는 꼭 비문을 읽는다. 오래 전에 안양 삼막사에 갔었는데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내신 정대스님의 부도 탑이 있고 비문은 한글과 한문을 혼용해서 적혀있다. 대충 다 읽겠는 데 줄탁(啐啄)의 줄자를 도저히 읽을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스마트폰이 아니어서 찾아 볼 수도 없고 해서 입구 변에 마칠 졸 이렇게 기억하고 산행을 계속했었는데 의도치 않게 과천으로 하산을 하게 되었다. 안양유원지에 차가 있기 때문에 버스정류장으로 가는데 어느 학교 교문에 啐啄同機라고 적혀있었다. 순간 얼굴에는 밝은 미소가 생기면서 “그거였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줄탁동기 줄탁동시 다 같은 말인데 병아리가 부화하기 위해서는 안과 밖에서 동시에 쪼아야 한다. 학교에 딱 맞는 말이고 불교 용어로 쓰일 때는 치열한 수행자를 의미한다. 그러니까 정대스님은 총무원장 소임도 잘 했지만 수행자로서도 공부를 많이 했다는 내용을 적었던 것이다. 불교를 이해하는 것은 종교를 넘어 문화를 이해하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의 삶과 직결되어있다고 볼 수 있다. 우스갯말로 목사님이나 신부님이 책을 내면 안 팔리지만 스님이 책을 내면 베스트셀러가 된다고 한다. 그 이유는 목사님이나 신부님은 하느님 말만 하지만 스님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요즘 방송을 보면 스님들의 일탈행위가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도 하지만 수질승가하증(雖嫉僧袈何憎) 비록 승려가 밉기로 가사까지 미우랴. 는 뜻으로써 문제 있는 승려 몇 때문에 불교 전체를 싸잡아 비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유평마을까지 이어지는 길은 몇몇 구간을 제외하곤 너덜 길에, 급경사에 오르막 내리막, 가도 가도 끝이 안 보인다. 나도 좀 걷는 편에 속하는데 무릎이 아프니까 1K 나아가는데 1시간이 모자랄 지경 이다. 이런 길을 종주하는 사람들은 뛰어 다닌다고 생각하니 오늘날 우리들은 호모사피엔스라는 보통 사람들과 호모에너자이저라는 잘 훈련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유평마을에 도착하니 어둑어둑해진다. 아스팔트길 4K는 1시간이면 충분하다. 집에 도착하여 횟집에서 대방어를 사다가 소주1병으로 만찬을 하고나니 피로는 가고 기쁨이 찾아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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